올림픽에 프로선수가 참가하다

미국 농구 드림팀의 탄생

미국 대표팀 입장에서 볼 때 동메달을 받은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수치스러운 일대 사건 이었다.

미국은 농구이 종주국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농구 베테랑들인 모인 NBA리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대표팀은 NBA 선수들도 올림픽에서 뛰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림픽 대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 모여 기량을 겨루는 국제 스포츠 대회인데 정작 실력이 뛰어난 NBA 선수들에게  ‘프로선수’라는 이유로 출전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 올림픽위원장은 국제농구연맹인 피바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농구 종목에서 올림픽 출전 자격을 심사하는 국제기구가 바로 국제농구연맹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NBA 커미셔너였던 데이비드 스턴 역시 당시 세계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프로라는 이유로 올림픽 대회에 참가하지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하면서 미국 올림픽위원회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결국1988년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다음 해인 1989년 미국 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NBA 커미셔너의 강력하고 끈질긴 로비로 1992년 올림픽 대회부터 프로 농구 선수들이 올림픽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선수 자격 규정을 변경했다.

프로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은 당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의 목표인 올림픽 대회의 ‘프로화’ 및 ‘상업화’ 정책과도 잘 맞아 떨어졌다.

예상대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NBA 최고 기량의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 남자 농구 대표팀이 출전하여 올림픽 흥행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드림팀으로 구성된 미국 대표팀은 결승전까지 경기를 총 여덟번 했는데 상대팀과의 점수가 평균 40점 이상 차이가 났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 드림팀의 척 데일리 감독이 경기 도중 단 한 차례도 작전시간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최고의 기량을 가진 뛰어난 선수들이 모인 명실상부한 역대 최고의 농구 드림팀 이었다고 할 만하다.

이러한 드림팀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월등한 실력을 발휘하며 미국 본토 농구의 우수성을 만천하에 알렸다.

미국 농구 드림팀 수모를 당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역시 이러한 농구 명문 드림팀의 전통을 유지하는 듯 싶었다.

4기 드림팀에 속한 선수들의 면모를 보면 엄청난 위력이 느껴진다  ‘킹’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2019-2020 시즌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우승 팀으로 이끈 주역인 르브론 제임스를 비롯해 앨런 아이버슨, 카멜로 앤서니, 드웨인 웨이드, 아마레 스터드마이어, 팀 던컨등 NBA 올스타 선수 명단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선수들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국가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많은 스포츠 도박사들은 미국 남자 농구 드림팀을 강력한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손꼽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

첫 경기부터 푸에르토리코에 73대92로 대패했다.  그뿐만 아니라 리투아니아 대표팀에 4점 차이로 또 한 번 패하면서 결국 1988년에 이어 또 다시 동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당시 대표팀 감독은 래리 브라운 이었다. 래리 브라운은 2001년 NBA 올해의 감독상을 받은 명장으로 통했으며 1275승 935패의 기록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이끌었던 4기 미국 농구 대표팀에 무슨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래리 브라운은 과연 무엇을 놓친 것일까 ?  누가 이길지 모르는 승부의 예측 불가능성이 스포츠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하지만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로 구성된 드림팀이 올림픽 대회에서 또사시 동메달에 그친 이사건은 많은 농구 팬들에게 적지 않은 축격을 주었다.

그렇다면 패인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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